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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10-10-20 09:05
    [시골편지]나무꾼의 사랑은 그렇게 익어가리라
     글쓴이 :
    조회 : 992  
    도끼질을 한창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른 나무라 잘 안 뻐개지지유.”
    집 앞을 지나가던 옆집 아주머니가 어렵게 도끼질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작년에 잘라서 말려둔 소나무인데, 이상하게도 잘 뻐개지지 않았다.

    “나무가 물러서 그런 게 아니고요?”
    도끼질을 하다 말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마른 게 더 안 뻐개지유.”
    “참나무는 말라도 잘 뻐개지던데…”
    그래도 수긍하지 못하고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참나무는 결이 쭉쭉 발라 그런데, 소나무는 안 그러유.”

    마른 나무가 잘 뻐개지는지 무른 나무가 잘 뻐개지는지, 참나무가 잘 뻐개지는지 소나무가 잘 뻐개지는지도 모르는 내가 낑낑대며 도끼질을 하는 이유는 나무보일러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충청도 시골의 전형적인 일자집인데 구들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 집에 원래 있던 구들을 우리 가족이 이사 오면서 없애버렸다.

    부엌에 있는 아궁이는 이미 막혀 있어서 아예 나무를 땔 수 없게 되어 있었고, 또 집이 한동안 비어 있었던 터라 방구들이 곳곳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서 어차피 사용할 수 없게 된 방구들이라, 방바닥에 보일러 배관을 깔면서 구들장을 걷어내 버렸다.

    그러면서 기름보일러와 나무보일러를 함께 설치했다. 물론 이전에 나무보일러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지만, 비싼 기름을 좀 아껴보겠다는 마음으로 나무보일러를 설치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구들을 데우면 그 온기는 오래간다. 보통 저녁 때 밥을 준비하며 불을 때고 난 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지피면 겨울을 날 만하다. 하지만 나무보일러는 계속 나무를 넣고 불을 때야 한다. 나무를 빼고 불을 끄는 순간 금방 방이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많은 나무를 해댈 자신이 없어 한밤중에는 나무보일러를 끄고 대신 기름보일러를 다음날 아침까지 돌린다. 그리고 한낮에는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를 올스톱 한다. 초저녁이 되면 다시 나무보일러를 가동시킨다.

    도시가스만 사용하고 살았던 때와 비교하면 난방시스템이 상당히 복잡해진 셈이다. 기름 값은 시골이라고 싸지 않다. 그렇다고 땔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도시가스는 시골 아닌 도시에만 있다. 자연스레 복잡하게라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 나무보일러가 먹는 나무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초저녁부터 한밤중까지 겨우 네 시간 정도 나무를 때는 셈인데, 보일러 안에 나무를 잡아먹는 귀신이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겨울이 되면 나는 나무꾼이 되어야 했다. 자그마한 톱 하나 달랑 들고.

    벌목꾼이 아닌 다음에야 산 놈을 베어 넘길 수는 없지 않나…

    다행히 집 뒤에는 산이 있었다. 어찌 보면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낮은 구릉 같은 동산이 죽 이어져있는 형세라고 하는 게 더 알맞다. 어쨌든 가난한 나무꾼이 몸을 비빌 언덕은 되어 주었다.

    그렇다고 내 산은 아니다. 산에 주인이 있다는 말이 하늘에 주인이 있다는 말처럼 납득 못할 것이었지만, 여하튼 이 시대에는 산의 주인이 버젓이 눈을 뜨고 있다.

    땔감으로는 최고로 치는 참나무가 눈앞에 보여도, 그게 살아 있는 놈이라면 눈을 감고 지나친다. 내가 산의 주인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무리 서투른 나무꾼이라 해도 벌목꾼이 아닌 다음에야 산 놈을 베어 넘길 수는 없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간혹 나무들이 서로 무성하게 뒤엉켜 잘 자라지 못하는 경우에 그 중 한두 그루를 베어주면 서로 잘 자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껏 그렇게 나무를 베어본 적은 없었다.

    서로 뒤엉킨 나무 중에서 어떤 게 잘 자라고 어떤 게 못 자랄지를 내 눈으로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눈은 기껏해야 땔감만 쫓는 나무꾼의 눈일 뿐이다. 그런 멍한 눈으로 어찌 나무의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늘 먼저 찾는 것은 세찬 바람에 찢겨나간 나무다. 한여름의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굵은 가지가 찢어진 나무들이 있다. 혹은 거의 통째로 꺾인 나무도 있다. 그 나무의 수명이 십 년 이상 된 것이라면 그때는 횡재다. 제법 굵고 실한 땔감은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땔감을 톱질하는 일은 힘들다. 수명이 십 년, 이십 년 된 굵은 나무를 톱으로 베려면 한겨울에도 땀을 흘려야 한다. 남들은 윙윙 세차게 돌아가는 엔진톱으로 땔나무를 손쉽게 잘라대지만, 내 손에 들려 있는 장비라고는 조그마한 톱 하나밖에 없다.

    예의가 없는 엔진톱…단번에 나무의 세월을 잘라버리니까

    그걸로 굵은 나무를 운반하기 좋게 대여섯 토막으로 자르고 나면,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어깨도 뻐근해지고 손아귀 힘도 쭉 빠져버린다. 그 동안 나무가 살아온 십 년, 이십 년의 세월을 베는 데 그 만한 성의도 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엔진톱은 예의가 없는 셈이다. 윙윙 하는 엔진 소리와 함께 단번에 나무의 세월을 잘라버리니까. 어떤 경우에는 나무꾼 자기 다리까지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난봄에 엔진톱을 한 번 사용해 본 뒤로는 다시는 그것을 손에 들고 싶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거의 죽어가는 나무나 이미 죽어버린 나무를 찾는다. 주변 나무가 무성하면 큰 나무들 때문에 햇빛을 잘 보지 못하는 작은 나무가 말라죽는 경우도 있고 병이 들어 죽는 나무도 있다.

    죽은 지 오랜 나무는 너무 삭아서 땔감으로는 부적당하지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는 꽤 쓸 만하다. 그러나 그 불땀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땔감을 톱질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날도 오후쯤에 나무를 하러 뒷산을 갔다. 장갑 낀 손이 시릴 정도로 날은 추웠다. 여기저기 삭정이를 자르고 있는데 죽은 나무가 눈에 띠었다. 완전히 삭아버리지 않아서 꽤 쓸 만했다.

    그때까지 잘라서 쌓아놓은 삭정이도 들고 내려가기가 만만찮은 양이었지만, 좀더 굵은 나무가 눈에 띠자 욕심이 일어났다. 톱을 들고 그 나무를 잘랐다.

    나무 하나를 거의 다 토막 낼 무렵이었다. 마지막으로 힘을 주어서 톱을 잡아당겼는데, 예상외로 나무는 쉽게 동강이 났고, 힘이 들어간 톱은 그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내 오른쪽 무릎을 쳤다.

    산을 오가며, 삭정이를 잘라준 나무 하나 하나를 다시 만나고…

    순간 “억” 하는 외마디 비명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무릎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바지가 흥건히 젖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바지를 걷으니 피가 줄줄 흘렀다.

    톱이 무릎을 치면서 톱날이 살을 파고든 것이었다. 그 톱이 엔진톱이었다면 내 다리는 죽은 나무처럼 댕강 잘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는 나무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하지만 배고픈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눈감고 지나칠 수 있으리요. 땔감이 눈에 보이면 톱을 쥔 내 손에는 불끈 불끈 욕심이 돋아난다.

    마지막으로 찾는 것은 삭정이다. 그것은 말라죽은 채 나무에 붙어 있는 가느다란 가지를 말한다. 삭정이는 바싹 말라 있어서 불땀이 좋다. 하지만 가느다란 가지들이라 불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처음 불을 지피기 시작할 때 주로 사용한다.

    이제는 대부분의 집에서 아궁이를 쓰지 않는 터라, 삭정이를 잘라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니 요즘은 삭정이를 몸에 안고, 보기에도 힘겹게 서 있는 나무들이 많다.

    삭정이는 특히 소나무에 많다. 그것도 손이 닿는 아랫부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꽤 높은 데까지 있다. 그래서 소나무의 삭정이를 자를 때 나는 나무를 탄다. 마치 타잔처럼. 나무 줄기 중간쯤에 있는 가지를 밟고 올라서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삭정이를 자른다.

    삭정이에 얹혀 있던 누런 솔잎이 우수수 머리로 떨어지고 몸 속으로 파고든다. 머리 위에서 풀풀 날리는 톱밥은 눈으로도 들어오고 입으로도 들어온다. 마른 가지들이 하나 둘 땅에 떨어지고 나면 소나무에는 푸른 솔잎을 안고 있는 싱싱한 가지들만 남는다.

    햇빛을 받은 소나무는 더 훤해 보이고 푸른 솔잎은 더 푸르고 더 싱싱하게 보인다. 소나무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마치 더부룩하게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깨끗하게 잘라내고 정돈한 사람처럼.

    이렇게 저렇게 애써서 나무를 해서 마당 한구석에 쌓아놓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무꾼의 배는 절로 불러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마당 한쪽에 쌓여 있던 나무는 어느 새 시커먼 재로 바뀌고 만다. 그러면 나무꾼은 다시 톱을 들고 산을 향한다. 어제 갔던 그 산으로.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나무꾼이 오가는 길은 더욱 멀어지리라. 나무꾼은 더욱 깊이 산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한 시간 걸리던 일이 두 시간이 되고 세 시간이 되리라.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 산을 그렇게 오가며, 삭정이를 잘라준 나무 하나 하나를 다시 만나고, 바람에 찢겨진 가지와 죽은 나무를 베어준 숲을 다시 지나리라. 세월이 흘러갈수록 나무꾼의 톱질은 산의 속살을 애무하듯 섬세하고 부드러워지리라.

    산에 기대어 사는 나무꾼의 사랑은 그렇게 익어가리라. 나무꾼을 맞아들이는 산은 푸근하고 넉넉한 숲으로 그에 화답하리라.

    그놈의 기름에는 이런 사랑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