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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10-10-20 09:06
    [시골편지]'겨울'을 담근다, 겨울 맛을 기다리며
     글쓴이 :
    조회 : 932  
    김장은 시골 겨우살이 준비 중에서 가장 큰일이다.
    식구들이 내년 봄철까지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니,
    김장은 어떻게 보면 한 해의 마지막 농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맘때가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김장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김장했어요?”
    “그 집은 언제 해요?”

    서두르다 보면 아직 따뜻한 날씨에 김치가 쉬 쉬어버리고,
    느긋하게 뒷짐지다 보면 갑작스런 한파에 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김장 때 담는 배추김치에는 배추 외에 양념거리로 여러 가지가 들어간다.
    저마다의 입맛에 따라 들어가는 양념의 종류가 다르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새우젓, 까나리 액젓, 동태, 대파, 쪽파, 미나리, 갓, 무채 등을
    버무려 양념거리로 쓴다.

    새우젓을 사러 나섰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광천의 토굴 새우젓이 여기 가까이 있다.
    오일장날에 맞춰 광천으로 갔다.
    작년에는 옆집 아주머니를 따라가서 손쉽게 새우젓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혼자 나섰다.

    “한 깡에 이만 원!”
    “한 깡에 삼만 원!”
    시장통에 즐비한 새우젓 장사들이 소리를 외쳐댔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음식점의 밥맛이 좋듯이 새우젓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한 점 집어먹어 본 새우젓은 짜기만 하였다.
    짠맛만으로 좋은 새우젓을 가리기에는 내 입맛은 너무나 둔했다.

    새우젓 시장 골목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다가 골목 끝에 있는
    가게에 들어섰다. 의외로 주인은 30대 나이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몇 년씩 삭인 젓갈을 다루어서 그런지 여기 새우젓 장사들은 한결같이
    그 젓갈처럼 곰삭은 나이였는데, 이 사람은 거기에서 비켜서 있는 나이였다.

    “이거 얼마에 팔아요?”
    “이만 원요.”
    남자가 혼자 와서 그랬는지 나를 힐끗 보더니 젊은 여자가 다시 말했다.
    “몇 포기나 담그시려고요?”

    새우젓 시장 골목에 들어선 뒤로 처음 들어본 질문이었다.
    다른 장사들은 자기 새우젓이 맛있다는 말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갑자기 이곳 새우젓이 좋아 보였다.
    “삼사십 포기정도…”
    “그러면 만원 어치만 사가세요.”

    내 귀가 번쩍 열렸다. 조금 더 비싼 것을 조금 더 많이 팔려는 장사치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면 그렇게 주세요.”
    나는 새우젓을 입에 대보지도 않고 바로 결정했다.

    새우젓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새우젓 시장 골목을 지나며 나는 고개를 돌려 ‘○○상회’란
    이름을 머리에 새겼다. 단골은 흥정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올 김장에는 새우젓에 배어 있는 젊은 여주인의 맛깔스러운 마음까지 담기겠다.

    김장 양념거리 중 제일 중요하고 또 가장 많이 필요한 게 아마 고춧가루일 것이다.
    고추를 빻으려면 먼저 마른 고추의 꼭지를 따내고 병들어 곰팡이가 난 부분을 잘라내어야 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라 편한 마음으로 덤벼들었는데,
    마른 고추에 가위질을 할 때마다 고추의 매운 가루가 날리어 눈과 코를 찔렀다.
    올 고추는 유난히 매웠다.

    마치 최루가스가 기습하는 듯했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까지 매웠다.
    방안에 있는 아이들과 아내도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이틀 동안 열다섯 근의 마른 고추를 다듬으면서 그 만큼의 눈물과 콧물을 흘렸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집에서는 매년 100포기 이상의 배추김치를 담갔는데,
    엄마는 그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매콤 달콤 짭짤한 양념을
    노란 배추에 말아서 오물오물 씹어먹는 데 정신이 없었던 어린 나는 엄마의
    매운 눈물을 볼 수 없었지만, 김장이란 자식 둔 어미의 눈물까지 담그는 모양이다.

    마늘과 생강을 손질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김장 기술자인 아내의 손은 김치의 맛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양념을 버무려
    속을 넣는 일에 쓰이리라.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준비들은 김장 보조인 내 몫일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고 난 저녁,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 마늘과 생강을 다듬었다.
    고추만큼 맵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신에 손에는 마늘과 생강 물이 진하게 배었다.
    땅속에서 알을 맺는 놈들이니, 아마 그 물에는 땅속 기운이 한껏 녹아 있을 것이다.

    김장 김치의 깊고 그윽한 맛은 바로 이 마늘과 생강의 조화이리라.
    자기들이 안고 있던 땅속 기운을 김치 속에 스며들게 하여,
    김치가 은은한 땅 맛을 내게 하는 것이리라.

    지금으로부터 오천 년 전 멀고 먼 옛날에 깊은 굴에서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곰의 신화는 이처럼 나의 손에 밴 김장의 흔적에서도 여전히 생생하다.

    김장 하루 전날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
    소금에 절여 하루정도 배추의 숨을 죽였다. 아마 이 과정은 배추의 숨을 고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밭에서 호흡하던 그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라고. 내일이면 배추는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땅속 김칫독은 벌써 준비해둔 지 오래였다.
    아마 한 달도 전이었을 것이다. 작년에 쓰던 장독을 땅에서 꺼내 깨끗이 씻어 말리고,
    그 장독 속에서 신문지를 태워 매운 연기를 쐬게 했다.
    그렇게 하면 장독 안이 말끔히 소독된다는 게 아내의 지론이었다.

    물론 그것은 아내의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보여줬던 생활의 지혜였으리라.
    대개 이런 지혜는 책이 아니라 핏줄을 통해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씻긴 장독을 한 삽 깊이의 땅속에 다시 묻어두었다.

    이 장독은 우리 가족이 이곳에 이사오기 전에도 이미 집 뒤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김칫독이었다. 이 집의 옛 주인이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써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또 김칫독으로 그 장독을 사용하고 있다.

    장독의 입과 바닥은 좁지도 넓지도 않아 적당하고 그 깊이는 한 삽쯤이고
    그 배는 한껏 불러서 땅속에 묻을 김칫독으로는 제격이었다.
    또 그 크기가 우리 식구의 일 년 김장거리를 머금고 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김장 당일. 절인 배추에 속을 버무려서 김칫독에 넣었다. 날은 벌써 캄캄했다.
    나는 손전등을 밝히고 옆에 섰고 아내는 배추를 하나하나 장독에 넣었다.
    차곡차곡 하나씩 켜켜이 눌러 담았다.
    김칫독 속이 그득하도록 배추를 담고 마지막으로 배추 우거지를 덮었다.

    땅속 장독에 들어간 배추는 이제 얼었다 풀렸다 하는 하늘땅의 리듬에 따라 김치로 익어갈 것이다.
    한 삽 깊이의 땅속에서 비가 오면 빗물을 먹고 눈이 오면 눈물을 먹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먹으며
    김치로 자랄 것이다. 차가운 삭풍이 불어대는
    응달 속에서 겨울 기운을 그대로 먹고 김치로 변신할 것이다.

    가만히 보면 겨우살이 김장은 배추만 담그는 게 아니다.
    한 삽 깊이밖에 안 되는 한 아름의 장독 속에 넓고 푸른 하늘을 담그고,
    불그레한 황토의 땅을 담그고, 휘몰아치는 세찬 바람을 담그고,
    촉촉한 겨울비를 담그고, 푸근히 내리는 함박눈을 담근다.

    그래서 김장김치를 한 포기씩 헐어 먹으면 하늘을 먹고 땅을 먹고 바람을 먹고
    비를 먹고 눈을 먹는 셈이다. 겨울을 온통 그대로 먹는 셈이다.
    속이 그득한 김칫독에서 겨울을 꺼내 먹고 겨울을 나는 게 시골 겨우살이다.

    이제 기다림만 남았다. 입안을 쩡―하게 만드는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김치를…